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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iant Step

A Giant Step

■ 힙합, 개척정신, ‘New Frontier’ 오늘날의 힙합은 70~80년대 유행한 포크•록 음악과 마찬가지로, 한국대중음악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새 길을 제시한 선구적 인물도 존재하기 마련. 예를 들어, 전세계 힙합의 역사를 통틀어 눈부신 업적을 남긴 DJ프리미어가 없었다면? 가요계에 다이나믹듀오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장르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혹은 다르게 뒤틀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표현방식은 달라도 각자의 나라에서 힙합뮤직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두 팀의 가치는 이미 특별하다. 힙합 장르에 숨을 불어넣은 두 아티스트가 만났다. 다르면서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DJ프리미어와 다이나믹듀오, 두 팀의 콜라보는 만남 만으로도 거대한 이벤트임이 분명하지만 결코 거대한 스케일만을 좇지 않았다. 화려하게 포장하기 보다는 진솔한 소리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공감어린 최자와 개코의 래핑 위에, 묵직한 프리모(DJ프리미어의 애칭)의 존재감이 편안히 받쳐주는 식이다. 말끔하게 정제된 비트의 세련미, 거친 질감과 여유, 이러한 감상은 두 팀이 모였을 때 발하는 화학반응이다. 둘의 결합이 모난 곳 없이 매끄럽다. ■ 다이나믹듀오 x DJ프리미어, ‘Real Collabo’ 올해로 활동 30주년을 맞이한 DJ프리미어는 그동안 나스, 제이지, 카니예 웨스트, 블랙아이드피스, 마룬파이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작업한 인물로, 힙합계 레전드로 손꼽히는 프로듀서다. 먼저 손을 뻗은 건, DJ프리미어 측이었다. 지난 2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음악박람회 미뎀에서 공연한 다이나믹듀오는 DJ프리미어 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서로에 대한 음악적 공감은 곧 협업으로 이어졌다. 진정한 음악 파트너로서 말이다. 이는 기존 국내 뮤지션과 해외 아티스트간 펼쳐졌던 단순한 피처링 차원을 넘어선 대규모 프로모션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90년대 말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처음으로 만들어보려고 좌충우돌하던 시절, 우리에게 프리모의 음악은 교과서였다. 힙합계의 거장이자 우리의 음악적 영웅과의 작업은 설렘 그 자체였다.” 어릴적 동경하던 뮤지션과의 콜라보는 그들에게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또 동서양 힙합아티스트간의 콜라보는 공감과 존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작업임에 분명하다. ■ 배려와 존경이 빚어낸, ‘A Giant Step’ 음악은 진솔하고도 강력하다. 이들은 대조적이면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두 트랙을 배치해 묵직한 인상을 남겼다. 첫 싱글 [AEAO]에선 웅장함을 가로지르는 소울풀한 프리모 비트를 간결하게 유지하면서 다이나믹듀오 특유의 진솔한 래핑을 담았고, [Animal]에선 프리모 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니멀하고 날 것의 소리로 가득 채웠다. 특히 프리모가 개척한 공격적이고 미니멀한 붐뱁 사운드 등 기술적 감흥을 다이나믹듀오의 트랙에서 들을 수 있다는 건 음악을 접하는 또 다른 재미다. 서로를 향한 배려심에 감상 포인트를 맞춘다면 더더욱 흥미로운 두 트랙. 굳이 변화무쌍한 전개를 펼치지 않더라도, 인상적인 하나의 루프를 반복하면서 듣는 즐거움을 명쾌하게 제시한 프리모 비트의 날카로움은 여전하다. [AEAO] 치열한 도시의 삶에서 크고 작은 일들에 지치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이겨내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곡. 간결하면서도 그루브한 비트, 욕심을 덜어낸 진솔한 랩이 어우러지니 ‘과욕’보다는 ‘여유’가 넘친다. 이국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사운드, 사뭇 진지하면서도 따라 부를 수 밖에 없는 강력한 후렴구. 거장다운 묵직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그루브를 이끌어내는 흥분을 머금고 있으니 아주 적절한 합이다. 심각하지 않으면서 조곤조곤 핵심을 꿰뚫는 식이다. 또한 군더더기 없는 개코의 아련한 보컬라인과 히트곡 제목을 재치있게 배열한 최자의 랩은 개성으로 기억될 다듀 식의 표현법이다. [Animal] 또 다른 느낌의 스릴을 선사한다. 프리모의 대표적인 붐뱁 사운드와 다이나믹듀오만의 풍자와 공격적인 래핑을 기대했다면 최적의 트랙. 공격적이고 미니멀한 사운드는 피가 끓는 열정 혹은 분노 이런 강한 에너지를 맹수의 아우라에 빗대어 표현됐다. 무엇보다 랩 본연의 청각적인 재미와 언어유희를 최대한 부각시킨 곡으로, 미처 분출구를 찾지 못했던 청춘들의 겁없는 외침이다. 마초적인 매력이 트랙 곳곳에 가득하다. ■ 물음표에서 느낌표로..기록이 될 첫 발자국 시대를 거슬러 힙합에 새 길을 제시한 이들의 만남은 발전적인 협업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지닌다. 힙합이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다. 그것도 아주 고급스럽고 친절한 방법으로. 고집과 절충의 조화 덕분이다. 오랜 기간 한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새로운 것을 꾸준히 요구하는 예술 영역에선 더더욱 존경받을 일이다. 정통성을 지켜나가면서, 시대와 정신을 말하는 것은 난해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DJ프리미어와 다이나믹듀오, 이 두 팀은 각자의 방식으로 꾸준히 한 길을 걸어왔다. 꽤나 영리하게 시대와 접점을 이뤘고, 한 영역에서 정점을 찍었다. 물음표에 가까웠을 이들의 낯선 음악이 결국 시간이 지나 느낌표가 됐듯이. 어느 분야에서든, ‘혁신’은 남보다 한 발 크게 내딛었을 때 가능하다. 또 그 변화는 적잖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가치를 인정받는다. 거대한 첫 발을 내딛은 두 팀의 가치는 리스너들의 기억에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글 / 대중음악칼럼니스트 손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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